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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유익

시편 119편 65~72절

#시각이 중요하다.
예전에 ‘감시자들’ 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범죄자를 잡는 형사들의 이야기 입니다. 이 형사들은 일반사람들과는 달리 눈으로 본 것의 대부분을 기억해 냅니다. 범인의 인상착의와 이동경로, 습성까지... 그래서 범인을 기가 막히게 잡아냅니다. 마치 인간 cctv와 같습니다. 얼마나 훈련을 했으면 눈 안에 들어온 사실들 모두를 기억해 낼 수가 있을까요? 우리 나라에 이런 경찰들만 있다면 범인이 발 디딜 틈이 없겠습니다.
 
인지 심리학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기억한다고 합니다. 사람들마다 눈을 통해 같은 정보가 들어와도 그것을 기억하고 해석하는 것이 서로 제각각임을 보면 우리는 그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학과별 싸움 해석
대학 교정에서 싸우는 학생을 본 교수님들 왈
경영학과 교수님 : "얘들아~싸우면 손해다."
의상학과 교수님 : "싸우지 마라 옷 찢어질라....."
행정학과 교수님 : "계속 싸우면 경찰 부른다 ~!"
응용통계학과 교수님 : "일주일에 한번 꼴로 싸우니.....쯧쯧."
아동학과 교수님 : "그만 싸워 애들이 배울라 ~"
신문방송학과 교수님 : “남들이 보고 있다는 거 모르나?!"
중국어과 교수님 : "임전무퇴."
영문학과 교수님 : "Fighting!"
경제학과 교수님 : "으이그~돈도 안되는 녀석들."
식물학과 교수님 : "우와 진짜 박 터지게 싸우네."
법학과 교수님 : "너희들 이제 다 구속감이다!"
사진학과교수님 : "저거봐라 너희들 다 찍혔어. 이녀석들아."
식품영양학과교수님: "도대체 저것들은 뭘 먹었길래 영양가없이 저럴까?"
건축학과 교수님 : "저 녀석들 저렇게 기초가 안 돼있어.

 
어떻습니까? 다들 보는 눈이 자기 중심적이지 않습니까?
 
때로 우리는 삶을 살면서 우리는 보고 싶지 않은 것들, 그래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볼 수 있어야 우리 인생의 시야가 넓어지며 배우는 것이 많고 그래서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오늘 말씀에서 시편 기자는 보통의 사람들이 보고싶지 않고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부터 아주 귀중한 것을 발견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19편은 모두 176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데 이 119편의 절마다 반복되는 특징은 절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말로 계속 반복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1절부터 잠깐 보시면 여호와의 율법 //2절 여호와의 증거들// 3절 주의 도// 4절 주의 법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시편기자의 표현이 176절동안 한절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말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집에가서 한번 줄쳐 가면서 찾아보세요
숙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 65절부터 7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기자가 너무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으로 인하여 더욱 철저하게 삶 가운데 배우게 되고 더욱 지켜지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시편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또 71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과 주의 말씀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누구도 줄 수 없는 아주 값진 것 얻었다는 고백 하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다 = 하나님의 말씀을 떠남
이제는 = 고난을 통과한 후에는 =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을 통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배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인생에 고난을 경험하기는 싫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세상으로 향해있던 마음들이 돌이켜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각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고난을 유익으로 바꾸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의 다양한 형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라고 할 때 그것은 여러 가지 원인, 다양한 형태로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우리의 실수와 범죄로 인한 고난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탕자의 고난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궁핍함에 처한 탕자는 육적으로 영적으로 비참한 상태가 됩니다. 그 고난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께 돌아가 회개하고 자신이 한 잘못을 인정하고 종으로라도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고난이 변화의 계기가 되는 전환점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안됩니다. 여기에 아버지의 조건없는 용서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완전한 용서로 그를 맞이하고 아들의 권위를 회복시켜 줍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고난 역시도 하나님은 그것을 형별이나 심판이 아니요 징계요 훈계로 사용하십니다. 회개하며 고난을 감내하고 깨닫고 돌아오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적인 회복과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누가복음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둘째,사단의 올무/죄악된 세상의 현실로 인한 고난(믿음의 시련)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살면서 억울하고 애매하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다윗왕,예레미야선지자,바울사도등 수많은 예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런 고난의 과정을 이겨 나갔습니까?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함으로, 인내함으로, 용서함으로, 나아갔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믿음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욥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셋째, 하나님의 연단과 테스트로서의 고난입니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시험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나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정받는 믿음으로 세우시려는 은혜의 방편이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너무 나 큰 고난의 현실로 다가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중심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으로 세워졌습니다. 창세기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렇게 구분해 놓았지만 우리는 고난 가운데 어떤 고난이 내게 임하고 있는지를 완전하게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복합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고 복합적으로 그러나 말씀 드렸다시피 고난가운데 우리의 대처와 그 과정에서의 삶의 행동은 동일합니다.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고난의 길 속에서 은혜의 길이 보이게 됩니다.

어느 고등학교의 체육시간. 수업종이 울리고 학생들이 모두 운동장에 모였는데 3명의 학생이 늦게 나왔습니다. 화가 난 체육선생님은 벌로 누워서 자전거 타기를 시켰는데 한 학생이 몇바퀴 돌리다가 그냥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 야 너 왜 안해!
학 생 : 내리막길인데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차게 굴러야 앞으로 갈 수 있는 고난의 오르막길을 인내로 가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의 은혜의 내리막 길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고난 가운데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은 절대 구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오르막길에 구르면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가려는 것은 자신이 처해 있는 이 고난의 길 너머에 은혜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믿기 때문입니다. 그 고난 너머에 있는 것을 볼 줄 아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오르막길이 아니라 시원한 바람을 맞는 내리막길이 있다는 확신. 이렇게 길고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고난의 과정을 돌파할 수 있게 됩니다. 살아있는 연어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죽은 연어는 물살을 따라 내려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앞에서 살아있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 고난의 길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한 지름길이며 터널을 통과하듯이 지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의 성경 해석서 미드라쉬에 나오는 다윗왕의 반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 명했습니다.
“날 위해 반지를 하나 만들되, 반지 안쪽에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도 결코 교만하지 않게 하고,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도 결코 좌절하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이에 궁중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반지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세공인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빠진 솔로몬은 이렇게 적으라고 일러주었답니다.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과 같은 어두운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고난이 지나고 나면 우리 인생의 어두운 고난의 터널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한 지름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 비전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고난을 감내해야만 했습니까?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총리가 될 수 있었을까요? 돈을 많이 내서 총리자리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이집트라는 대제국의 제2인자가 되는 것이 그의 수준에서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그 꿈을 현실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요셉의 꿈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목적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이 그를 이끌어 가신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과정을 보십시오
꿈을 꾸고 가족에게 오해를 받았습니다. ........................포기
꿈 때문에 형제들의 시기로 인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포기
머나먼 타국 땅에서 살게 되었음 포기.......> 고난이 하나님의 비전과 꿈의 무대로 이동시키심
보디발의 집에서 총애를 입었음 가정총무됨------------형통
보디발 아내에게 누명썼음 포기..> 하나님 앞에서 범죄치 않음
감옥에 갇힘 포기.......> 요셉은 거기서 성실하여 간수장이 됨
술맡은 관원장이 그를 잊음 포기......> 사람을 의지 하지 않음
2년간 감옥에서 더 갇힘 포기....> 인내하며 하나님 때를 배움
바로의 꿈을 해석함 ------------------------------형통

 
자 세어 보셨습니까? 요셉의 여정가운데 우리가 형통이라고 할 만한 부분들이 몇 번 등장했죠? 단 두 번입니다. 애굽의 제2인자가 됨 현실이 되고 자신의 가족과 민족을 살리는 지름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가운데 항상 요셉을 따라다녔던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39장 2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고난의 시간들이 횟수적으로는 너무 많았지만 그 가운데 중심을 드리며 하나님을 의지했더니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고 하나님의 기회로 인하여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형통이라는 말의 뜻을 잘 새기시기 바랍니다. 형통은 일이 잘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전제해야 할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잘 되어 간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난중에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요셉은 범사에 형통하였다는 성경의 말씀이 맞는 것입니다. 요셉을 하나님의 목적지 까지 가장 빨리 데려다 준 길은 바로 고난의 길입니다.
 
그리고 더 큰 은혜를 발견합니다. 고난을 상대하고 이겨나가는 그 과정안에서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축복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축복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축복 사이에 간극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고난을 통과하면서 알게하시고 하나님의 복된 길로 인도해 가신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내가 겪는 고난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포기해야 할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저는 저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느날 집에서 청소를 하다가 퍼즐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아무 그림도 없는 그냥 검은색입니다. 이 퍼즐을 보면 무슨 그림일까 상상조차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방에서 완성되지 않은 로봇 그림의 퍼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빈 곳이 제가 청소하다 발견한 퍼즐조각의 자리였습니다. 그냥 검은 조각일 뿐인 이 조각이 퍼즐판에 놓임으로 인하여 퍼즐은 완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요셉의 범사를 형통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믿음의 삶에는 필요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고난도 형통이 됩니다. 고난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퍼즐조각이 됩니다.

 
우리가 기쁠 때는 그 날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반대로 고난의 때는 더디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고난의 때에 자신의 문제점을 보거나,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기 보다는 남의 탓을 하며 원망을 하게 됩니다. 어렵고 힘든 순간일수록 말을 아끼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특히 남의 탓을 하는 것은 마귀의 탁월한 전략인데,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데 남의 탓은 그것을 왜곡해 나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는 어짜피 지나갑니다. 그렇게 보면 고난의 때는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 기회를 선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난은 아픔을 겪지 않았더라면 결코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본 모습과 하나님, 그리고 삶에 관해 배우는 학교입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정재찬]
모든 꽃길은 그 밑에 흙을 깔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흙길이 아니면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흙길이 곧 꽃길입니다.

흙길을 꽃길이 되게 하기 위하여 흙길일 때 씨앗을 뿌리고 풀이 보이면 매어주고 골라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을 보는 또 다른 시각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난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는 유다 백성의 반대, 왕과 고위 관리들로부터의 압박을 받았으며, 때로는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고난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어 매우 큰 장애와 어려움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12: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하나님에 대한 의문: 예레미야가 겪고 있는 심리적 갈등을 드러냅니다. 그는 자신의 고난과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을 비교하며, 왜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들보다 악한 자들을 더 잘 되게 하시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12: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에게 현재의 고난을 통해 더 큰 고난에 대비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고난에 대한 그의 이해를 넓히는 중요한 말씀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현재의 고난을 잘 견뎌내는 것은 미래의 더 큰 사명과 시험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준비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눈물의 목회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점점더 악해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작은 고난에서의 인내와 준비, 고난을 통한 영적 성장,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고난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성장할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있는 고난이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기도로 무장/대비라고 주시는 방편입니다.
하나님께 맡겨 올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향한 더 큰 비전과 목적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이 주일의 예배 여러분의 한주간을 온전히 책임지고 있습니까? 부족하다면 여러분 한주간 주중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죄악된 살얼음판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기도 없이 살겠습니까? 고난을 피하면서 사시려구요? 안됩니다.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말과 경주하겠습니까? 기도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명을 대비하십시오!! 우리 교회의 미래를 기도로 책임지십시오!!

 
# 고난의 길 끝에는 좋은 열매를 먹을 수 있습니다.
 
존 번연은 가장 깊은 고난의 중심 그 감옥에서 “천로역정”을 낳았습니다.
마틴 루터는 교황청으로 부터 파문 선고를 받고 은둔생활을 하던 때에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독일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고난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마지막 몇 년간 생애 최고의 대작의 책들을 낳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료는 꽃이나 열매에서 추출한 것이 아니라 향유 고래 기름에서 추출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의 향유 고래 기름에서 향료가 나오는게 아니라 병든 고래의 기름에서 나온 물질이 향기로운 향료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용연향-엠비기스}라고 한다. 아프고 병든 고래가 자신에 몸에서 아픔과 고통을 이기기 위해 이 기름을 고체형태로 뿜어 낸다고 합니다.
천연진주의 생성과정은 어떻습니까? 조개 껍데기 안쪽 얇은 막 속에 이물질이나 기생물이 침투하게 되면 조개는 이물질로부터 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성분을 분비하게 되는데 그것이 점점 단단해져서 천연진주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병든 소 즉 담낭·담관에 염증으로 생긴 결석을 건조시켜 만든 우황이 해열, 진정, 강심제로 쓰입니다.
로키산 정상 부근에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수목 한계선}이 있는데 거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겨우 웅크리고 있는 볼품없는 모습을 한 나무가 가장 공명이 잘되는 바이올린 재료가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섭리도 고난 가운데서 가장 갚진 것을 만들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 안에는 하나님께서 이 고난이라는 선물을 통해 얼마나 값진 것들을 예비하고 계신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이제는 바꾸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난을 피하고, 오히려 육신의 즐거움에 취해 있을 때 영혼의 승리를 경험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여러분이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나를 쳐 복종시키며 발버둥 치고 있다면 그것은 낭비되고 허비되는 시간이 절대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배우는 시간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현장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지름길입니다.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야고보서 1장 2~4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6장 8~10절 성도의 정체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고난받는 세상속에서, 죄악된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성도의 정체성입니다.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은 절대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고난을 통해 우리의 삶에 기회를 주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한 복된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원망하거나 남의 탓을 하기보다 오히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깊이 알고 고난을 말씀과 기도로 이겨나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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