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변모
누가복음 9장 28~36절
#변화산
오늘은 교회력으로 ‘산상변모주일’입니다. 산 위에서 영광스럽게 변모되신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본문이 바로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모되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변모되신 사건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도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지만 누가복음은 더 구체적으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변모되신 산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다볼산(Mount Tabor)이 변화산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다볼산은 이스라엘 갈릴리 지역에 위치한 해발 약 575m의 산입니다. 우리 지역의 산 정도의 산입니다. 현재 다볼산에는 이 예수님의 변모의 영광의 사건을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다볼산이 이 사건 후에 역사적으로 변화산으로 불리게 되었고, 예수님의 영광을 품은 산이 되었습니다. 어떤 높고 아름다운 산 보다도 멋진 산,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복된 산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누가 찾아오십니까? 우리도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영광을 맛보면 삶이 변화됩니다. 아브람/아브라함이 되었고, 야곱/이스라엘 되었고, 시몬/베드로가 된 역사처럼 우리의 삶을 영광스럽게 바꾸어 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이 영광의 순간을 조금 더 자세히 상고해 보겠습니다. 주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함께하길 축원합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이 말씀을 하신 후....이 표현은 누가복음 9장 18-27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가리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됩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 (눅 9:18-20)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으셨고,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예고 (눅 9:21-22) 예수님께서 자신이 많은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심.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 (눅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즉 누가복음 9장 28절의 "이 말씀을 하신 후"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부활, 그리고 제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가르치신 말씀을 의미합니다.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8절 후반부...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뿐만 아니라 사역 중에도 자주 한적한 곳에서 늘 먼저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공생애 전 40일 금식기도 (눅 4:1-2)
-새벽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 (막 1:35)
-중요한 결정 전 기도 (눅 6:12) →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 밤새 기도하심.
그러나 오늘 누가복음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세 명의 수제자(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따로 데리고 함께 기도하시러 다볼산 즉 변화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이 영광의 순간을 누가는 어떤 복음서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영광의 변모 사건 그리고 그 의미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기도 중에 변화되시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신성과 영광을 직접 보여주신 특별한 사건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9장) 현장실습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왜 변화되시면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나요?
1. 예수님의 신성과 영광을 체험하게 하시기 위해
변화산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단순한 선생(랍비),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2. 앞으로의 사명을 감당할 준비를 시키기 위해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예수님의 핵심 제자로서 이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3. 십자가의 길을 준비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곧 십자가를 지실 것이었고, 제자들에게 그 길을 미리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영광을 경험함으로써, 십자가 사건 이후에도 믿음을 지키도록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대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누가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도 마찬가지로 하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누가복음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다른점은 누가복음 3장에서는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시는 예수님을 향한 말씀이라면,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임받을 제자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영광중에 나타난 위대한 모세와 엘리야! 그들의 대화의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모세와 엘리야
특별히 모세와 엘리야를 보여주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언급하게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모세와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걸출한 지도자요 선지자, 예언자입니다. 더 확실하게 보면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요 엘리야는 ‘예언’의 대표자입니다.
누가복음만이 모세, 엘리야와 예수님의 대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대화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십자가의 죽음이라고 하지 않고 ‘별세’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같은 뜻이지만 ‘별세’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엑소도스’인데 이말은 ‘탈출’(going out), ‘출발’(departure)의 뜻으로 죽음의 본질적 의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떠나가는 것으로 새로운 출발이라 할 수 있스비다. 그런데 다른 한편 ‘엑소도스’는 이스라엘의 ‘출애굽기’를 의미하기도 하는 바(히 11:22) 예수의 죽음은 죄악으로 인한 죽음의 상황에서 인류를 탈출시키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강조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변모의 찬란함 속에서 대화의 내용이 바로 ‘예수의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출애굽 사건의 모세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엘리야의 모든 사역은 결국 예수의 죽음을 예비하는 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가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신34:6) 엘리야 역시 살아 있는 상태로 회오리바람에 의해 하늘로 올라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왕하2:11)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을 친히 미리 맛본 구약의 대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의 역사를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모세와 엘리야의 말이 그쳤습니다. 36절은 이제 그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과 엘리야의 예언이 결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그 사랑보다 높을 수 없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세로 대표되는 율법의 완성이요 엘리야로 대표되는 예언의 성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제자들은 이 영광스러움 앞에 어떻게 하였을까요?
#베드로와 제자들의 모습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영으로 봤습니까? 눈으로 봤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도하지 않고 졸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지금 이 순간에만 피곤하여 졸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기도의 거룩한 습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기도가 없이는 즉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우리는 영의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여주셔도 그것을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영광이 어떤 영광인지 모르고 심지어 사람의 영광으로 그 영광을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광경을 보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머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그 자체는 귀한 것입니다. 그 영광에 머물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귀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이 무엇을 통하여 임하는지, 무엇을 통과해야 하는 영광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님만 보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해야 할 줄 믿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지만, 그 영광이 십자가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변화산의 영광만 누리고 싶어 했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려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변화산 산위에 머무는 신앙? - 눈에 보이는, 순간의 영광만
변화산 산 아래로 내려가는 신앙인가? - 영원한 십자가 영광
요한복음 12장 42~43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우리가 요한복음을 새벽에 묵상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반부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하셔도 유대의 지도자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 제자들도 깨닫지 못하고 ‘동문서답’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별세 – 고난의 역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유사품 주의’ = 같은 영광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영광을 감당하시러 내려가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이후 누가복음 9장 37~43절에서 우리는 이것을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간 제자들 말고 밑에 남아 있던 제자들의 실상도 그렇습니다. 그들도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이 연약해졌습니다.
이튿날 산을 내려오신 예수님이 보신 것은 한사람의 귀신들린 아이를 능히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시며,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어 온전하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내려오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자들은 왜 못했을까요? 누가복음 9장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누가복음 9:1~2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그런데 그들이 그 능력과 권위를 받았음에도 기도하지 않고 성령을 의지하지 않으므로 잃어버린 것입니다.
평행본문(같은본문)인 마가복음에서.. 왜 우리는 못합니까? 할 때.
마가복음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우리에게도 이미 성령을 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이 근심케 되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을 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불과 누가복음 9장 성경 한 장이 넘어가기 전에 같은 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척하지 말고 진짜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산 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았지만 산 아래있던 제자들과 다르게 예수님이 주신 권능을 행하는 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가 성령을 체험하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 성전미문의 나면서 걷지 못하던 자가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고난 없는 삶을 구하지 말고 십자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짜 영광을 보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반사체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반사체’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발광체’가 아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빛이 아니라 빛을 받아 반사하는 자들입니다. 성도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빛나야 내가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우리 ‘반사체’가 영원히 빛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빛되시고 ‘발광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발광체 되시는 주님께서 십자가의 영광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보다 화려하려고 합니다. 미국 북쪽 지방에서 사는 어떤 흑인 직장인 한 명이 먼 지방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흑인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주일 아침에 숙소 근처에 있는 교회를 갔습니다. 예배당 계단으로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문 앞에서 안내를 맡은 백인이 이 흑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여기 들어오지 못합니다.” 흑인은 깜짝 놀랐습니다.“왜 들어가지 못합니까?” 그러자 백인이 대답합니다. “여기는 백인들만 모여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흑인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그 흑인은 하는 수 없이 계단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안에서 들려오는 찬송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비몽사몽간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흑인의 어깨를 두드리시며 물으셨습니다. “너는 어째서 여기에 혼자 앉아 있느냐?” 흑인은 예수님의 옷을 붙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예배드리려고 이 교회에 왔는데 제가 얼굴이 검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여기 앉아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흑인의 어깨를 다시 두드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그 예배당에 못 들어갔느냐? 나도 그 예배당에 한번도 들어가지 못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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