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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41~13

#전부를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이 땅에 자신 전부를 주시려고 오셔서 전부를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목숨을 내어주실 뿐 아니라 그분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사는 그리스도인 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의 대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하나님과 타인 즉 죄인인 우리를 위한 삶 이셨습니다.

 

우리에게 전부를 주시며 또 본을 보여주시는 말씀을 따라 우리가 깨닫고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특별히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시험받으심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읽은 대로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십니다. 본문 첫 소절부터 우리를 아주 당황스럽게 하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41~2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시고 성령에게 이끌리시는 것은 맞지만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다니요?

 

오늘 본문에 바로 앞 장인 누가복음 322절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세례를 받으실 때 누가복음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셔야 합니까? 또 마귀는 어떻게 감히 예수님을 시험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으로서는 전혀 시험받을 만한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시험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페이라조입니다. 이것을 마귀에 의해서 부정적으로 쓰일 때는 죄에 빠뜨려 넘어뜨리려는 유혹입니다. 오늘 이 시험의 겉형태를 보면 그렇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유혹(템프테이션)’ 하여 인류구원의 길에서 이탈하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주도권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귀에게 있습니까 성령에게 있습니까?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셨다는 말씀에서 우리가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께서 마귀의 시험을 일정부분 허용하신 것입니다. 시험’(페이라조)이 성령에 의하여서 쓰일때는 긍정적인 의미로 주도권을 가지신 성령님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시험받고, 입증되고, 강하게 되고, 강화되며 정결케 되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귀가 유혹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통하여, 예수님은 어떻게 승리자가 되시는가, 어떻게 승리로 시작하시는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셨을까요?

바로 앞으로 수많은 시험에 봉착할 우리 인생을 위한 예수님의 체휼이신 것입니다.(아낌없이 주는 나무) 즉 죄악된 세상의 의도와 유혹의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목적을 가지신 것입니다. 다시말해 설명서를 써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모델로 하여 우리 인생의 인생사용 설명서를 이 말씀안에 써주시는 장면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인생사용설명서 시험편입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우리의 인생에는 필연적으로 언제나 시험거리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은혜를 입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성도들에게 시험(유혹)은 더욱 교묘하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 역시도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시험거리들을 직면하십니다. 마귀가 감히 예수님을 시험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와 같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즉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험과 고통을 그대로 체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시험에서 승리하심으로 이 땅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믿음을 가지고 살아감에 있어 예수님의 승리의 출발은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큰 소망을 줍니까?

 

#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봄

 

첫째. 두 번째 아담으로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오늘 말씀 직전 3장에 누가는 왜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합니까? 이것은 단순한 혈통 기록이 아니라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복을 주신 첫 번째 아담이 실패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담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고 죄의 역사이며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죽음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으로 오신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이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첫 번째 아담은 마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죄에 빠졌습니다(3:6).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5:19). 아담은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척박한 광야에서 주리심 가운데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은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첫 번째 아담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각종예배,말씀읽기,묵상,기도,사순절 영적성장 플래너는 하나님과의 성공적인 관계를 위한 방편임을 아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인간이 겪는 시험을 친히 승리로 경험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시험을 당하셨지만, 죄를 짓지 않으시고 승리하심으로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시험으로부터의 승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기 위해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그보다 앞서 이루어야 할 필수적인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시험은 전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끌림을 받는 성도들은 시험이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오는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말씀안에서 깨닫고 알 수 있게 되고 대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모르면 시험을 받으면서도 시험인줄 모르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잘 배우고 알아 시험에 승리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십자가 사역을 더 공고히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십자가를 향해 가는 길이었습니다. 광야에서의 시험은 예수님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고, 메시아의 사역을 감당할 준비를 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어떤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셨습니까?

첫 번째 시험받으신 내용과 승리 능력이 아닌 순종

 

누가복음 4: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한번만)

첫째.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떡을 변하게 하므로 증명하라!

하나님의 아들되심!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 그리고 예수님의 기도속에서는 늘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어떤 특별한 능력을 사용함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그 관계안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예수님의 순종의 모습과 사역을 통하여 친히 증명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심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 떡덩이가 되는 것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거짓조건을 거는 것입니다. 아들의 배고픔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아버지로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분리하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고 살아가는 이상 마귀의 유혹은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더뎌지고, 삶의 문제가 생기고 시련이 계속될 때, 우리 마음에 의심이 찾아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맞나?...이것이 시험거리입니다. 그때 거짓의 영인 마귀는 그 의심을 먹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니요. 틀림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여전히 앞으로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자녀에게는 절대 마귀는 그 관계를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 것입니다. 끝까지 끈질기게 의심하도록 거짓말을 할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자녀됨을 외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철저하게 하나님 의존적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의존적 존재가 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화1
저희 둘째 아들이 어렸을 때 제가 한번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언아 사실 너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조금 심각하라고 심각하게 이야기했더니 이제까지 저에게 장난치고 재롱떨던 아이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어색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놀란 것은 그 심각하고 어색한 표정이 순간 저의 얼굴과 똑같다고 저희 사모가 말하면서 빵 터져 버렸습니다. 피는 속일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핏값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피의 자녀입니다. 감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부모도 네가 내 자녀라면 너의 능력을 증명해봐 라고 하는 부모가 없듯이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절대 너가 내 자녀라면 너의 능력을 증명해봐 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닮아감

 

둘째.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도록 시험

마귀의 시험(유혹) 하나님의 뜻보다 나 자신 위해 살라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유혹이 이런 형태로 온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고난받는 종의 길을 가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며 이 땅의 것만을 쫓아 살아가도록 하게 종용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원하는 정치적이고 일그러진 메시야의 모습을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어떤 능력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인류구원의 십자가의 사명을 위해 집중하시고 기도하시며 사역하셨고 순종의 모습으로 나아가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형태로 유혹은 찾아옵니다. 끊임없이 나를 위한 것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나를 위한 하나님!, 나를 위한 교회!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마귀는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열심의 방향을 너에게 돌리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면 결국에 교회와 성도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나!, 교회를 위한 나!로 하나님께 드릴 때 교회와 성도는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영적승리의 비결이 됩니다.

예화2
JOY 선교회 의미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 and spell JOY" "예수님을 첫째로, 이웃을 둘째로, 나 자신을 마지막에 둘 때 참 기쁨(JOY)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본문 주소가 똑같습니다!

 

# 예수님께서 어떤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셨습니까?

두 번째 시험받으신 내용과 승리 편법이 아닌 정도

누가복음 4:5~7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한번만)

 

마귀는 산에 올라 세상의 영광을 예수님께 보여주었습니다. 마귀는 공중 권세잡은 자로서 자신이 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짓의 영인 사단의 거짓말입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에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 죄를 먹고 큰 마귀는 자신이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속이는 것

 

예화3 봉이 김선달 한양으로 가서 어느 부잣집에 들어가 자신의 가문에 대대손손 물려내려온 평양의 대동강물을 팔겠다고 합니다. 대동강물은 공공재로서 한 개인의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봉이 김선달은 그 당시 대동강의 물을 퍼서 나르는 물장수들에게 미리 자신의 돈을 맡기고 며칠 후에 자신이 왔을 때 돌려달라고 하는 수법으로 부자에게 물세받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아주 비싼 값에 대동강을 팔고 종적을 감춥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상상을 하는 것이죠! ! 대동강물이 저렇게 많은데 내가 대동강물의 주인이 되면 어마어마한 큰 부자가 되겠구나! 라는 상상입니다. 물질적 가치로 점철된 세상에서는 얼마든지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오직 물질세계에 갇히게 만들고, 물질세계를 지배하여, 사주팔자, , 궁합 등등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의 노예가 되어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노예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사야 55:1~2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런 거짓과 편법으로 온 만물의 주인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정도를 가시고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값을 다 지불하시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누림은 세상과 다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평안하고 기쁨입니다. 두려움이 없고 불안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얻게 하시며, 적절한 때에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고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며 부자이십니다!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나의 손이 수고한대로 먹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는 주님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편법을 구하지 마십시오. 말씀에는 편법이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정도를 가십시오.

원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일용하게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 예수님께서 어떤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셨습니까?

세 번째 시험받으신 내용과 승리 시험이 아닌 신뢰

 

이제 마지막 시험입니다.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에서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순서와 다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누가복음의 두 번째 시험이 마지막 시험으로 등장하고 마태복음의 두 번째 시험이 누가복음에서는 마지막 세 번째 시험으로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4: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한번만)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시험의 장소와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사건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의 시험의 승리의 최고봉은 예루살렘에서의 승리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의 성전 꼭대기로 이끌어 갑니다. 이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승리가 곧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시는 사건의 궁극적인 승리를 예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740~42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내려오지 않은 승리

 

누가복음 4: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였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 신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유혹에 승리의 본은 오늘 우리에게 마귀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혀 알게 해주셨습니다.

 

마귀는 불순한 의도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의도가 불순해도 그 의도를 파악하신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기록된 신명기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은 잘봐봐 여기 말씀이 있잖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라도 하시듯이 특별한 능력이 아닌 오직 기록된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이 신명기의 말씀은 광야 백성들에게 주어진 말씀인데 왜 그들은 실패했을까요? 그들은 원망,불평 하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했습니다. 자 이제 불평하느라, 원망하느라, 비교하느라 시간 보내지 말고 말씀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승리하는 자들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유혹의 의도,방법을 모두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 밝혀 놓으셨습니다. 인생 사용설명서를 다시 잘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말씀 안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끊임없이 유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담대하십시오 이미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승리 안에서 승리하십시오! 마귀의 유혹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딱 한번만을 요구할 것입니다. 이번 한번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딱 한번만은 우리에게 지난번에도...”를 들이밀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주님은 아시기 때문에 단 한번의 유혹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카드를 꺼내며 단호히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이끌어 가시도록 우리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도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셨다면 우리 역시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길을 가는 제자로서 마땅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에서는 성령의 이끌림과 마귀의 유혹이 공존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선택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이 심하고 우리의 가까이에서 도사리고 있지만 반면에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것도 우리는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기도,성령은 우리에게 늘 가까이에 있습니다. 무엇을 잡으며 살아가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할수록 마귀가 주는 세상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이 말씀을 깊이 이해하며 나아간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이 말씀의 완전성을 믿는다면 마귀가 가져다주는 어떠한 유혹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편119:165)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유혹을 받습니다. 유혹은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긴느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입니다. 사순절 기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는 날 동안 주님의 말씀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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