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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 앞에 서다

요한복음 1913~16

성 목요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성 금요일 새벽에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십니다.

 

1. 28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가니 새벽이라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소집된 유대의 최고의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결론을 내림(26) 유대총독의 관정으로 끌고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사형을 집행해 줄 것을 요청(31)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나이다

 

로마제국에서 식민통치를 받던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이 투철하여 다스리기 까다로움 그러나 예수를 죽이는 데에는 오히려 자신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915절에 가증스러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의 충섬심과 야욕을 자극

 

그러나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경우 신성모독죄에 해당한다면 이들은 돌을 들어 쳐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그들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에 서민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면 자칫 순교자라는 소문이 나고 예수 운동이 더 커져 메시야로 인정을 받을 염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신명기 21: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하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들은 로마에 있는 십자가의 처형이 자신들의 율법에 나무에 달린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를 해석하여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예수며 그러므로 거짓 메시야라고 낙인찍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던 것입니다.

 

2. 32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한복음 3:14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유대인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예수님을 효과적으로 죽이려는 악한 꾀로 인하여 악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말씀대로 아무 차질 없이 흐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살리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율법대로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리셨으니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므로 메시야가 될 수 없다는 율법의 한계로 인하여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조상들의 이런 큰 죄악으로 인하여 예수님께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도 자신의 동족이 그렇게 예수님을 거부하고 믿지 못하는 것에 관하여 답답하여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갈 3: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3. 한편 이런 과정 속에서 빌라도는 어떻습니까?

빌라도는 유대총독으로 정치적으로 야욕이 있고 매우 민감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왜 못들었겠습니까? 전혀 정치적인 의도가 없음을 그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잡혀온 예수님과의 몇 마디 대화를 통하여 더욱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빌라도 :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33)

예수님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니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36)

 

빌라도의 결론은 38절처럼 예수님에게서 아무죄도 찾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하여 예수님께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옷을 입히고 채찍질도 하여서 이정도 하면 풀어주라 하겠지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풀어주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에게 매수된 유대인들은 소리지르며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유대인들이 빌라도의 야망을 자극한 것입니다.

12절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912절에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다고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916절을 보십시오 그의 최종 결정은 무엇입니까?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자신의 인기와 안위를 위해 진실에 눈을 감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지금도 빌라도는 가장 치욕적인 이름으로 사도신경에서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까?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마태복음 27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죄 없으신 예수님이 받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보다 큰 사랑이 있습니까? 이보다 큰 희생이 있습니까? 사단마귀의 모든 악한계략이 무너지고 우리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늘 매일 매순간 감사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라도도 머리로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인기와 그의 야욕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많은 기회가 그에게 있었지만 그는 진실을 외면했습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렇게 구원을 받았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아닌 순간 내 안위를 위해 살려는 유혹에 넘어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할 줄 믿습니다. 것은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 모든 주인됨이 죽어지고 예수님이 주인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최고의 은혜를 받은자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든 선택 앞에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선택인가? 최선인가?를 신앙안에서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늘 감사하고 감격하며 영광 올려드리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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