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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피를 힘입어

히브리서 1019~25

히브리서 개관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 변증서로 불리는 히브리서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소망을 심어 주어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키도록 권면하기 위해 기록했습니다. 개종 후 동족의 핍박으로 다시 유대교도로 돌아가려는 성도들에게 구약의 율법제사제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설명하며 예수께서 얼마나 율법의 완성이시며 모든 것보다 우월하신지를 보여주는 서신서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 ‘피로쓰인 책

구약과 신약의 핵심 연결고리 = 제사의 와 예수 그리스도의

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362번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구약의 율법,절기들,제사들은 피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1/3의 분량인 신약성경에서 98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 56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탄생배경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의 로 인함입니다.

사도행전 20:28b = 바울이 에베소에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세우고 떠나면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잘 보살피라고 당부하였음

사도행전 20:28b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형제들아...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앞의 말씀을 받으면서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형제들아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유대기독교인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서두에도 말씀 드렸듯이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다수의 유대인 속에 믿음을 가진 소수로서 존재하고 있으면서 핍박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가리키는 것은 구약의 율법이 틀렸다가 아니라 구약의 율법의 완성이시오 온전한 성취이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그러므로의 접속사가 분명하게 그 사실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7~18절에서 예레미야 31:33 인용하면서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8절까지 교리에 관한 부분으로 구약의 동물제물의 제사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 비교해왔습니다. 더 나은 것.

 

구약의 피의 제사는어떻습니까 1.성전안에서 2.특정한 사람들(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해 3.잠시동안 효력이 있으며 매번, 매절기, 매해 4.반복적으로 드려졌던 5.동물의 희생제사였습니다. 속죄 이후에도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 앞에 나아갈 수 없는 불완전한 속죄제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는 1.성전밖에서 흘리신 피 2.모든 인류를 위해 3.단 한번 흘리신 피가 그 피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에게 4.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담력(팔레시아)=자격=자유=확신을 얻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성소는 율법아래 모형인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하늘의 온전한 성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라 하실 때 그 마련된 성소입니다.

요한복음 14:1~3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또한 휘장 가운데로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지성소와 성소를 가려놓은 휘장의 높이는 40규빗(20m)이며 넓이는 20규빗(10m)이고 두께는 손바닥 넓이만큼 두꺼웠습니다. 그 휘장을 옆으로 밀어놓기 위해서 300명이나 되는 제사장이 동원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력으로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죄로 막힌 그 휘장을 걷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50~51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새로운 살 길(영원한 죽음의 길에서...)

그러나 새로운 살길이 열렸습니다.

 

죄인은 그 죄의 대가로 사형,징역,구금,금고,벌금,합의 등 다양한 방법 그 죄를 변제합니다. 죽음+영원한심판도 그 죄의 값을 다 속량할 수 없기 때문에 기약이 없는 영원한 심판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인생의 비극인 것입니다. 무한 반복되는 고통의 시간들도 그 죄를 다 사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혹한 죽음, 혹독한 심판의 크기

죄없는 육체가 찢어지는 고통, 죄를 뒤집어 쓰시고 하나님과 단절고통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크기에 비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

-영원한 생명과 죽음 공급받는 자에게는 즉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지만 거부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죄의 삯은 사망)에 그대로 놓여질 수 밖에 없는 생명과 죽음의 확실한 갈림길이 되는 것입니다.

-덮어주는 사랑(속죄=카파르=덮다)

까발려 정죄하는 것은 마귀의 사명입니다.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애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최초의 외의 덮으심

반영구적인 가죽옷(피를 뿌림으로 얻은)으로 죄를 덮어 살길 열어주심

유월절 어린양의 피 = 그 문이 피로 덮혀 있었기 때문에 넘어감

덮음을 넘어서..완전히 감싸안아 녹여 없애 주신 것 더러운 죄는 죽이고 죄에 더러워진 나를 살려주시고...

 

예화- 백혈구와 적혈구의 사랑이야기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의 표본

사람의 혈액, 즉 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사람의 피 속에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그리고 혈장이란 네 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신비한 능력을 행하는 것이 <백혈구와 적혈구>입니다. 백혈구는 몸에 이상한 침입자인 병균이 들어오면 침입자를 처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백혈구가 침입자인 병균을 처리하는 모습은 신비합니다. 백혈구는 침입자를 향해 절대 무력을 쓰지 않습니다. 대포를 쏘거나, 화학약품을 뿌리거나, 심한 욕설을 하는 게 아닙니다. 백혈구는 사람의 몸속에 들어온 침입자인 병균을 품에 껴안아 감싸버립니다. 몸 안에 들어온 병균은 감싸 안은 백혈구에 의해 저항을 하지 못하고 그냥 녹아 버립니다. “백혈구의 사랑은 놀랍기만 합니다. 보기 싫든, 지저분하든 가리지 않고 모두 껴안아줌으로서 자신 편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적혈구> 또한 백혈구처럼 아주 사랑이 넘치는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적혈구는 골수에서 태어나 폐에 가서, 몸 안으로 들어온 산소를 받아들여 온 몸 구석구석 안가는 곳이 없게끔 산소를 운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적혈구는 항상 생명인 산소를 풍성하게 품고 있으며, 혈액 속 이리 저리 다니면서 산소가 필요한 세포가 있으면 아낌없이 다 나누어 줍니다. “자신이 산소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산소가 내 것이라말하면서 우기지 않습니다. 자기 몫은 챙기지도 않고, 완전하게 산소를 다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만들어진지 4일쯤 살다가, 비장에 가서 적혈구로서의 역할을 끝내고 죽습니다.


<백혈구의 사랑>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사랑이며, <적혈구의 사랑>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백혈구와 적혈구의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백혈구처럼 모든 것을 다 껴안은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적혈구처럼 모든 것을 다 내어 주고 내가 죽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놀라운 사랑이 우리 모두가 나타내는 사랑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바뀌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전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불가학력적 이유,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고 씻음받을 수 없는 삶, 진노의 자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뿌려짐으로 벗어나고 씻음을 받았습니다.

자격없는 내 힘이 아닌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살 길이 열린 것입니다.

 

개인적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속하심에 대한 우리의 개인적인 응답은 무엇입니까?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감히 동물제물없이, 제사장이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아니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이 필요합니까?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전인격적인 동의와 함께 그 결정을 삶으로 표현하는 신실함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충분한 믿음이 아니라 온전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충분함은 상대적, 온전함은 절대적입니다. 충분한 믿음은 비교대상이 있는 믿음입니다. 100% 믿음이 아니어도 90% 믿음도 충분하다 할 수 있습니다. 90%믿음도 비교하여 훌륭하니 10% 다른 곳에서도 난 자랑할만하고 믿을만한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은 천국백성이라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구원받는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100% 신뢰의 관계이며 비교대상이 없는 믿음입니다. 난 오직 믿음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관하여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것도 끼어들 수 없이 하나님께 순전하게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충분하다 생각하면 사탄의 미혹이 파고들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입니다. 온전하면 그 틈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겸손하게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되면 온전히 서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입사시험에 통과했습니다. 그는 인사부장으로부터 합격되었다는 통보를 받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장님이 출장 중이시라 최종 결재가 남았어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결재하실 겁니다. 그러니까 99%인 셈입니다. 크게 걱정 말고 준비하세요.” 그러나 이 사람은 1%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다른 회사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훨씬 못한 조건이었지만 1% 부족이 마음을 흔들고 있었으므로 이것을 붙잡는 것이 결과적으로 안전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온전한 100% 합격이었다고 한다면 조건 나쁜 회사의 요청에 한눈을 팔 이유가 없이 감사합니다만 내 길은 결정되었습니다.”고 했을 것 아닙니까 온전한 믿음만이 모든 미혹을 벗어나게 합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향해 굳건해진 사람을 가리켜 의인이라 이르는 것입니다. 예언서와 로마서에서는 직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의인은 심판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구해 낼 수 있는 사람이며,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고난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처소를 보는 사람이 바로 의인인 것입니다.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절대 배신이 없습니다. 약속 즉 시작하신이가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굳게 잡으라는 것입니다

 

공동체적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속하심에 대한 우리의 공동체적인 응답은 무엇입니까? 24~25절입니다.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습니다.

모두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모두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습니다.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죄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의롭다함을 확인받고 인정받은 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안에서 그것을 매번 확인해야 합니다. 옛 언약에 대한 한계적이고 부족한 가르침으로 새 언약의 백성의 모임을 저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세상은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을 주입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날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역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주님 오실날이 가까움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사단은 모이기를 폐하려 하는 것입니까?

그 모임 안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모임의 중심에 계신 하나님이 그 모임을 주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역설/밥 무어헤드(Bob Moorehead) 목사님의
연설문집 "적절한 말들"에 게재된 "우리 시대의 역설(The Paradox of our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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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 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작아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어졌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지혜는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피우며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고 너무 지쳐서 깨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 텔레비젼은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한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하며
거짓말은 너무 자주 한다.
 
생활비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가치있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 졌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 버렸다.
공기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는 더 늘어났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다.
 
키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더 나빠졌다.
 
세계 평화를 더 많이 얘기하지만
전쟁은 더 많아지고
여가시간은 늘어났어도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더 빨라진 고속철도
더 편리한 일회용 기저귀
더 많은 광고 전단
그리고 더 줄어든 양심
 
쾌락을 느끼게 하는 더 많은 약들,
그리고 더 느끼기 어려워진 행복.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의 은혜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다면 끝까지 전하는 사명자로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피가 돌아야 살 수 있습니다. 누가 그 피의 전달자가 됩니까? 온전한 믿음을 가진자 만이 그 전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온전한 믿음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이 시대.. 분열의 영인 사단이 끊임없이 침투하여 갈라놓는 이 시대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시므로 더욱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는 우리 태평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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