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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영원한 왕

사무엘상 8:1~7

 

세상의 보편적인 가치를 따라 사는 것 우리의 삶에 육체적이나 감정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전부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 가치관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수가 그것을 찬성하고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진리가 아니며 그 가치는 늘 불안정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많은 수가 찬성하면 하나님의 법도 바꿀려고 하는 것이 세상의 가치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고 절대진리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수결로 그것을 옳다 그르다고 할 수 없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가능성이 없고 가망이 없을 때 우리를 위해서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는 본문에서는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 보이는 왕을 구하는 즉 세상이 원하는 가치를 따라 살려고 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먼저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 발단을 말씀을 통해 상고해 보겠습니다.

 # 사무엘의 아들들

 

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요엘 =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 아비야 =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실 때 성경은 늘 부르심과 응답에 관하여 기록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세습이라는 제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올바로 응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법을 소홀히 하고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 세워주셨다는 소명의식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다른 방법, 다른길, 다른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자인 줄 믿습니다.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른 길 가지 않기를 축원드립니다.

 

#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원래 자연스러운 말씀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엄히 말해서 바르게 행동하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이것입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왕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른 보기에는 사무엘의 아들들의 부패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왕을 요구하는데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20절의 말씀에 주목해야할 두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 같이 = 세상의 가치관

-우리() = 누구의 나라입니까?

 

첫째, 주변국들과의 대등한 위치에서 외교적으로 상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변국들처럼 대표가 없으니 외교적으로 상대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둘째, 국가의 안보를 위함이었습니다. 외세의 침입이 있을 때 중앙집권체제로 인해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들의 마음 가운데는 다분히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운영하겠다라고 하는 인본주의적 판단인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을 따라 가겠다는 선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무엇입니까?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예 지금 이 요구는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할 수 있는 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체험한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언제부턴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몇몇 사람들로 시작하여 그들의 마음에 찾아온 하나님의 통치가 피곤했던 것입니다. 조금만 욕심부리고 살려치면 하나님이 바로 치리하시고 정화하시고 다룸받게 하시고 고통속에 서 깨닫게 하시고...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런데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살다보니까 주변의 나라들은 왕이 있어서 백성들의 욕심과 이기적인 삶들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통치가 더 편하고 좋은 것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주변이 어디 입니까? 하나님이 정복하라고 명령하신 땅입니다. 그러나 온전히 정복하지 못함으로 유혹받은것입니다 이제까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셔서 모든 나라의 그 왕들을 이기시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복하라고 명령하셨던 그 죄악 된 것을 닮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죄악된 정복의 대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죄를 몰아내지 못한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는 늘 안믿는 사람들도 잘 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 안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하나님께 더 헌신해야 함에도 포기하고 핑계대고 나아갈 수 없는 것을 합리화 시킵니다. 그것은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의 합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완전한 기쁨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늘 죄된 세상과 비교합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해야 할 땅을 정복하지 못한 결과로 유혹받아 왕을 요구하는 것처럼 내 안에 죄된 습성을 아직 몰아내지 못한 결과가 세상을 끊임없이 부러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안 믿는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 우리 중에 그렇다면 오늘 이 밤에 내 안에 죄와 욕심들을 완전히 몰아 내시고 오직 십자가로만 내 안에 기쁨과 참 소망을 회복하시는 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또 믿는 사람과 비교합니다. 그것도 합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나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과정도 다릅니다. 우리는 신앙을 비신앙과 비교해서는 안되고 그리고 신앙안에서도 서로를 비교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분량이 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보지 말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하는 열망은 하나님을 대체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하나님을 대체하려는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은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체하려는 시도들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용서해 주시고 약속을 성취하히고 구원을 이루셨음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보게 됩니다.

 

뱀의 유혹 = 하나님과 같이 되라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유혹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체하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라는 유혹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본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수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올라서면 수치만 보일 뿐입니다.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수치를 가죽옷을 입혀 주시면서 가려주셨습니다. 그 가죽옷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의 죄악을 십자가의 은혜로 그 보혈로 덮어 주신 것입니다.

 

금송아지 = 우상숭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내산으로 올라간 모세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자신들을 인도할 신이라고 선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금송아지 형상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아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지만 광야 2세대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바라바 = 정치적 메시야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과 바라바를 세우고 누구를 풀어주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합니다. 그 때 그들은 바라바를 요구합니다. 바라바는 그 당시 일부에서 민족 해방의 영웅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실망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민족을 해방시켜 줄 것을 원했습니다. 출애굽을 인도했던 모세처럼 말이죠 예수님 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신성이 분명한데도 그들은 예수님의 육신적인 겉 모습만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로서 모든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메시야로 오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셨고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주시는 예수님을 그들은 싫어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바로 대체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핏값으로 해결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분명하면 절대 보이는 것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7절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영원하시고 썩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마음안에 계시고 어디에나 계시고 전지전능하신 완전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각자의 마음에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보여지는 왕같은 강력한 카리스마적 리더쉽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동일하시고 영원하시고 홀로 한분이신 하나님이 각자의 마음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 있는 리더쉽보다 더 하나가 되고 강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강력한 사람의 리더쉽이 필요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각자의 마음속에서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소홀히 해도 잘 되어가고 싶은 불순종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모두의 마음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왕되심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신실하게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더욱 영적으로 강한 공동체가 될 줄 믿습니다.

# 하나님의 리더쉽 VS 세상왕의 리더쉽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리더쉽, 믿음으로 따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그냥 넘어가시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의 정결함을 유지하시고 건저내시려고 늘 우리의 삶 속에서 마음 속에서 양심속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은 이렇듯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수준으로 나를 올려가며 살아야 합니다. 그게 복입니다. 광대하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참된 기쁨과 자유의 삶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언제든지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자유가 있습니다.

 

세상왕의 리더쉽

세상왕은 타협할 수 있습니다. 조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안전장치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욕심을 부리며 살아도 어느정도 인정해줄 완충지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은 백성을 위한 왕이 아니라 자신만 생각하는 왕이 된다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왕을 원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버거웠던 것입니다. 크고 광대한 삶이 아니라 작은 삶을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삶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작은 삶 내 앞길만 어떻게 해보고 싶은 작은 삶 말입니다.

 

이땅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분을 더 우리의 죄된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시도들은 참담합니다. 이땅에 내려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 지극히 높이 올려지신 예수님의 그 본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21.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다음 순간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것도 응답으로 주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왕을 허용하심으로 벌하신 것,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승낙하신 것이지만 포기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운 왕들을 통하여 그들이 철저히 실패함으로 진정한 왕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인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사울왕 다윗왕 수많은 왕들을 보겠지만 그들의 잘함과 잘못으로 인하여 그것은 즉 얼마나 하나님을 위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바벨론의 포로생활도 그들이 요구한 왕들이 하나님을 거역하였기에 일어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진정한 왕이 누구인가로 그들은 자신들의 왕들을 경험하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게 되는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참담한 요구가 있을까요? 하나님을 대체하려는 세상적인 모든 시도는 우리에게 고통만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가치관을 따르는 것은 잠시 육신의 안정을 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사는 것이 가장 복되고 형통한 인생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강함은 각자의 마음속에 계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한마음, 하나된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왕이신 나의 하나님 +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대체하려고 했던 수많은 시도들은 어떻습니까? 그것이 성공적입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신실하게 인도하십니다. 절대 하나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들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끌어 내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계신 곳으로 올라갑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사랑하셔서 고통중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왕으로 우리의 삶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대체하려고 했던 수많은 시도들 그 실패들 가운데 다시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이 회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이시간 기도합시다. 하나님 나의 왕이신 하나님 내가 주를 높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갑니다. 나를 받아 주옵소서 하나님만 섬기게 하시고 하나님만 따라 사는 제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한번 부르시고 기도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의 삶 우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품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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