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돌아가자(사무엘상 4:1~11)
# 다시 말씀하시는 하나님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사무엘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통해 말씀을 시작 하셨다는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늘 1절의 말씀이 전파되니라 이후에 이스라엘의 행동을보십시오
하나님은 전쟁을 명하시지 않았습니다 들려주는 말씀에 잘못된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환호하고 기뻐하며 말씀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순종과 자기소견에 옳은 삶을 살고 있는 백성들의 삶, 말씀을 거부하고 있는 삶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말씀을 등에 업고 때는 이때다 하여 말씀 이용하여 전쟁을 치르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삶에 들려진 동시에 그말씀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죄되고 무지한 삶, 그 두꺼운 교만의 껍데기를 몰아내는 결단의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첫 번째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사무엘을 통하여 들려지기 시작했음에도 너무뿌리깊은 불순종의 삶과 영적 지도자의 무지로 말씀앞에 믿음의 반응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말씀을 씨뿌리는 것에 비유하신 예수님 = 길가,돌짝밭,가시덤불...생명의 말씀을 받았는데 뿌리내리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이전의 죄를 쌓아 놓고 살아갑니다 죄에 대한 통회와 안타까움, 마음을 기경하는 회개가 없습니다 죄를 쌓아놓고 여전히 누리면서 말씀의 은혜를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그 자체가 능력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그 생명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
블레셋과 싸우는 가운데 드러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야 할 줄 믿습니다.
# 기회로서의 패배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오늘 본문은 블레셋과의 두 번의 전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의 전쟁은 첫 번째 전쟁입니다 결과는 패배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전쟁으로 완전히 패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긍휼하신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께 엎드릴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려지는 말씀앞에 반응을 하지 못하니 전쟁의 패배를 통해서라도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조금 무너짐을 통하여 나에 대해서 절망하고 하나님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뜻대로 하다가 패배했습니다. 내 고집으로 기도없이 하다가 실패했고 무너졌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말씀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기도의 삶으로 나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입니다. 인애하신 주님의 기회 앞에 두손들고 나오는 우리의 복된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
이쯤 되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처방1- 독백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패하게 하셨는고....? 이것은 기도입니까...독백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자신들의 상태를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가 삶에 나타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 하거나 하나님의 백성이 패한 이유에 대한 영적인 자각이 전혀 없습니다 첫 번째 패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깨닫지 못하고 지나 보냅니다.
# 여호수아의 행동
이 ‘어찌하여’를 우리는 어디서 또 보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수아 군대가 여리고성 전투를 승리하고 아이성 전투를 치르는데 아간의 죄로 인하여 첫 번째 패하고 돌아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7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이것은 원망처럼 보이고 푸념처럼 보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기도입니다. 하나님 왜 패하게 하셨는지 알려주십시오
도대체 우리가 왜 패한 것입니까? 그 때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아간의 죄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지금 독백입니다. 원망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인간적인 방법을 간구합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기도하지 않는 지금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생각한 방법을 보겠습니다.
#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처방2 - 행동
3하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이 어처구니 없는 행위를 보십시오~ 언약궤를 가지고 옵니다.
이 행위는 신앙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고 함부로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 움직이는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꼭 성막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동하신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 밖에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으신 상황이라면 모든 백성은 언약궤가 있는 곳으로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 언약궤가 갈 때 요단간 물이 마른것처럼 언약궤의 능력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약궤 자체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 언약궤를 주신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주객전도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 언약궤의 의미
그리고 지금 3절에서 보듯이 언약궤를 가리켜 ‘그것으로..’라고 합니다. 그것 물건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물건이라 칭합니다.
언약궤 안에 있는 내용물들은 무엇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만나 / 아론의 싹난 지팡이 / 십자가의 두 돌판 인간의 죄악과 한계 위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 - 원망하는 백성에게 생명의 만나를 주신 하나님 -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백성들을 향한 생명의 약속 - 우상숭배하고 거역한 백성들에게 두 번째 주신 돌판으로 다 시 말씀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아니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심 |
조금 전에 읽는 여호수아의 말씀에서 여호수아는 어떻게 합니까?
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여호와께 나아가서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의 필요에 가지고 온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대 인간도 이런 이용가치로 취급받는 것은 아주 괘씸하고 잘못된 것입니다. 아주 불쾌하고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이런 취급을 받았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이신데.... 그것이라니. 이용가치의 물건으로 보다니!!!! 우주의 창조자가 되시고 만물의 주인되신 하나님, 경배받으시기에 마땅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이런 취급을 받으신다면 어떻겠습니까? 혹시 내가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고 있는지 우리는 철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여러분 또한 보십시오. 결과적으로 볼 때 지금 이 전쟁에서 거룩한 것은 언약궤 뿐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의 신비함을 이용하려고 했지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죄악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다. 너무나 아이러니한 상황 아닙니까 거룩한 언약궤 옆에 거룩하지 못한 백성들...
거룩한 말씀 앞에 거룩하지 못한 삶.....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는 삶입니다
엘리 홉니 비느하스는 아마 이 전쟁을 통하여 전세역전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그 가문에 선포되었음에도 이 전쟁을 이겨 마지막 반전을 노렸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에 거룩한 언약궤 옆에 거룩하지 못한 가운데로 서 있는 것입니다. |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하나님의 없는 전쟁은....하나님이 참전하시지 않는 전쟁...
거룩함이 껍데기뿐인 전쟁... 블레셋 사람들이 정말 대장부 같이 강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으심으로 힘의 논리에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나단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전쟁은 ‘전쟁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삼상14:6) 그러나 지금처럼 하나님이 없는 전쟁은 사람의 많고 적음 힘의 논리로 싸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의 논리로 볼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골리앗 앞에 다윗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없는 전쟁을 하면서 골리앗을 이기려고 합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힘 없는 우리는 철저하게 누구를 의지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에요...다윗의 고백처럼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노라’ 느헤미야의 고백처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10절의 말씀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을 통해 완전히 패배했고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1. 전쟁의 완전한 패배(10)
2. 법궤을 빼앗김(11)
3.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 엘리의 죽음(11)
비느하스의 아내가 죽음
4. 그리고 블레셋이 눈치 챘습니다. 자신들의 승리를 통하여 이 제 더 이상 위대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가봇 = 영광이 떠났다, 없다
다음주에 5장을 통해 보겠지만 하나님의 강함은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아간 언약궤를 통하여 자신들의 신들이 초토화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두려움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철저한 자기절망이 하나님의 승리의 시작 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을 가져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기회를 놓치고 철저히 패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회개하면다시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은 늘 말씀앞에 설 기회, 회개할 기회, 기도로 나아갈 기회를 주십니다. 말씀내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내 삶에 이용하려고 끌어오는 삶은 절대 안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아시고 하나님께 나의 삶의 모든 영적 전쟁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슬기로운 말씀생활 > 사무엘상 강해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상 6장 설교 사무엘상 6장 강해 사무엘상 묵상 사무엘상 6장 1~9절 사무엘상 말씀 (0) | 2023.03.09 |
---|---|
사무엘상 5장 설교 사무엘상 강해 사무엘상 5장 1~12절 사무엘상 묵상 (0) | 2023.03.09 |
사무엘상 3장 사무엘상 3장 강해 사무엘상 3장 설교 사무엘상 설교 사무엘상 3장 1~21절 (0) | 2023.03.08 |
사무엘상 2장 사무엘상 강해 사무엘상 설교 사무엘상 2장 18~21절 사무엘상 묵상 (0) | 2023.03.08 |
사무엘상 설교 사무엘상 1장 강해 사무엘상 1장 1~12절 (2) | 2023.03.08 |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