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말씀생활/사무엘상 강해설교

사무엘상 27장 설교 사무엘상 설교 사무엘상 강해 사무엘 사무엘상 강해설교

주의용사2 2025. 3. 1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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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생각을 넘어 기도로

사무엘상 271~ 282

 

한 신앙인이 등산 중에 길을 잃어 깊은 산길을 걸어가다가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팔을 뻗어서 겨우 한 나뭇가지를 붙들게 되었습니다. 깊은 산중에 사람이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거기 누구 없어요? 하나님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 간절함이 통했는지 캄캄한데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소리였습니다.“얘야, 내가 너를 살려 주지. 그럼 살려주고 말고. 너 분명히 나를 믿느냐?, 네 분명히 믿습니다. 네가 그 붙들었던 그 나뭇가지를 놓아라.”밑을 내려다 봤더니 아주 깊은 벼랑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나무꾼은 다시 하늘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여보세요!! 거기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 없어요?!!”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살리고 싶어 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잡고 있는 것도 놓을 수 있는 절대적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놓으라하시는데 나는 안된다하면 기적의 역사는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 자신의 생각대로 하는 다윗

27다윗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오랜 광야 도피생활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어린 다윗에게 기름부으실 때는 분명 약속을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약속대로 분명 다윗의 도피생활을 끝내실 것이며 왕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어떻게 해서든지 기름부음 받은 사울왕을 자기의 손으로 죽이지 않겠다는 신앙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아주 좋은 신앙의 원칙입니다.

 

이런 신앙의 분명한 원칙을 세웠을 때 금방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고, 일이 척척풀리고, 잘 될 때는 그래 맞아 그러길 잘했어~ 역시 하나님은 대단하셔,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야!! 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내의 한계치하나님의 정하신 시간의 간격이 점점 커지면 어떻습니까? 지치게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 신앙이 느슨해집니다. 심지어 다른 생각을 품게 됩니다. 다윗 역시 그의 인내의 한계치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언제 끝날지 모르고 앞이 보이지 않는 도피를 계속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혼자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군사 600, 식솔들까지 합하면 어쩌면 2000명이 넘는 숫자가 다윗의 결정 안에서 생사에 기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윗은 버거운 책임감, 염려, 인간적인 생각들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기보다 마음에 생각하기를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사울의 손에 붙잡힐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어떻게 결정합니까?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지금 다윗은 자신의 생각 안에서 당면해 있는 문제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또 사울을 해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신앙의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비 신앙적인 결단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기도없이 마음에 생각으로 결심한 것을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함께한 자들을 위한 최선책, 어쩔 수 없는 선택 (좋으리로다. 상책이다.) 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결정에 다윗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판단력이 흐려져있는 결정입니다. 또한 하나님도 어쩔 수 없으실거야’,‘하나님도 인정해 주실거야라는 정말 잘못된 신앙의 해석입니다.

다윗은 사무엘상 21장에서 사울을 두려워하여 블레셋의 아기스에게로 도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단순히 두려움에 피한 것입니다. 그때 그는 미친척하며 목숨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수치스러운 행동이 기도없는 결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그러므로 기도를 할줄 몰라서 그런게 아닙니다. 그 상황이 다윗의 믿음을 이겨버리고 기도를 멈추게 한 것입니다.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육신의 눈을 들어 인간적인 방법을 찾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결단들이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실망으로 나아갈 때.. 체면상 신앙의 겉모습은 지키고 있으나 내면은 참 요동치고 갈등을 일으킵니다. 다윗은 차라리 그때 사울을 죽이는 것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더 신앙으로 강해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하나님께 더욱 엎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나의 생각에 최선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차선으로도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다윗에게 왕권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십니다. 여전히 그분의 계획을 이루시기에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비교가 됩니까? 오히려 하나님 앞에 깨어있고 잠잠하게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신앙의 최선입니다.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 사도는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교회의 리더들, 신앙인들을 향해 견책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마귀가 우리에게 인간적인 생각을 넣습니다. 그 방법이 더 옳다고 우리를 속입니다. 누구에게요? 믿는 자들에게요!!, 교회의 리더들에게요!!


세상의 방식이 믿음의 방식과 완전히 다르듯 믿음의 방식도 세상의 방식과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의 택한 방법이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았어도 그들은 결국 고난 당했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았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우직하게 신앙으로 하는 것이 돌아가는 것 같아도 가장 복된 방법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원칙, 목적이 선하다면, 방법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 다윗은 참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 일수록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다윗이 머물렀던 광야 어려워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눈물의 기도를 드릴 수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되어 주십니다.

다윗이 결정한 블레셋 우상이 가득 한 땅입니다. 하나님 의지 하지 않게 되고 기도할 수도 없습니다. 블레셋의 아기스 왕을 의지하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왕의 방법을 따르는 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절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하게 하는 마음의 생각과 내 지혜를 차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넘어져도 하나님쪽으로 넘어져야 합니다.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 이말이 얼마나 맞습니까?

 

4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소기의 성공

 

# 아기스에게 인정받으려는 다윗

그러나 어떻습니까? 5절부터는 다윗이 이제 아기스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는 장면이 12절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인데 말입니다.

5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6- 아기스가 그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아기스는 시글락 땅을 다윗에게 주고 그를 감시, 시험합니다.

 

다윗이 참 용맹하고 다윗만 자신의 편에 들어온다면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다윗은 지금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입니다. 이제 아기스가 생각하고 를 쓰기 시작합니다.

 

10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거짓말입니다. 8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그술,기르스,아말렉이었음 적의적 = 친구

 

11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다윗의 행동 자체가 누구의 신임을 얻기 위함입니까? 완전히 아기스의 사람이 되려고 하는 노력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12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

 

다윗이 어떻게 했으면 아기스가 영원히 다윗을 자신의 부하로 삼으려고 결심하는 것입니까? 다윗은 자신의 생각(판단), 어쩔수 없었고 최선의 판단이라고 여겼던 그 결정이 결국은 그 화살 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다윗도 마음에 생각했지만 지금 12절에 와서 다윗을 눈여겨 본 아기스도 생각합니다. 다윗에게 수가 있었다면 아기스에게는 더 깊고 앞선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신임을 얻기를 원했기 때문에 거짓말까지 하면서 아기스의 환심을 사는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아기스로 하여금 매우 위험한 결정을 하게 만듭니다 아기스가 결정한 것은 무엇입니까?

 

# 다윗과 함께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나가려는 다윗

281절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위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확실한 시험대를 마련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아기스의 생각()는 다윗을 데리고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고 큰 승리를 얻어서 이제 다윗과 같이 유능한 자를 자기의 오른팔로 세우려는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역사

한편 욕심과 두려움에 쌓여있는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통해 사무엘을 불러냅니다. 사실 사무엘이 죽었을 때 백성들은 슬퍼했고 사울은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신접한 자와 박수무당들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정치적 쇼였습니다. 사울이 블레셋에 의해서 압박을 당할 때 신하들에게 신접한 여인을 찾게되고 엔돌에 있는 여자무당을 찾은 것입니다.

 

거기서 사울은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는데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해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신접한 여인에게 듣지 않았어도 때의 문제이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역사의 흐름이었습니다. 정말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하여 사울이 그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전쟁에 아기스는 다윗과 함께 나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원칙을 지키려 아기스에게 피했던 그 생각의 종착지가 어디가 되는 것입니까?

 

그런데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은 그렇게 되는 것을 막으십니다. 블레셋 고관들이 다윗이 이스라엘 편이 될 수 있다고 아기스에게 간언을 하는 바람에 다윗은 그 전쟁에 참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원칙을 기뻐하시고 사울의 죽음이 다윗과 상관없는 것으로 이끌어가십니다.

프로 바둑기사들은 바둑돌 하나를 놓을 때 몇십수 앞을 내다보고 놓는다고 합니다. 몇십수 앞의 것을 생각하고 현재의 돌을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수 그 끝에, 아니 그것을 뛰어넘어 계십니다. 아무리 인간이 자신의 수로 최선의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생각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의 수는 다윗의 생각에 최선이었을지 모르지만 아기스의 수를 읽지 못했습니다. 내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에 의해 무참히 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 화살이 돌아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수를 읽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생각이 최선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최선인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고 현재 그 일이 안될 것만 같아도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하나님은 그 실마리를 푸시고, 결국 역전의 역사를 이루어 내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목표가 하나님의 것이 되도록 그 방법도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방향은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그리고 그 역사에 동참한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 이끌어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뜻을 묻고 기도로 진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를 준비하고 계시고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기 보다 하나님의 역사에 믿음으로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실 역사위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입니다. 기도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역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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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장기화로 인하여 우리는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정말 벗겨질 듯 벗겨지지 않는 이 상황에 많이 지쳐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의 생각, 우리의 두려움, 염려 그것에서 우리는 최선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최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최선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방법이 없어도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야 말로 진짜 최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최선인가 생각할 때가 아니라 기도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도 우리의 최선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이제 역전되리라

누군가는 하나님의 시간이 너무 더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하나님은 오차가 없으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세상에 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선은 기도입니다. 내 상황, 내 주변의 상황을 볼 때 무엇이 필요합니까? 기도가 필요합니다. 내가 엎드려야 하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 오늘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엎드려야 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코로나를 걱정하기보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업드려야 합니다. 엎드리면 하나님의 방법이 보이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 더욱 기도하겠습니다.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주여 한번 부르시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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